맨위로가기

자지 (춘추 전국)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자지(子之)는 춘추 전국 시대 연나라의 신하로, 연왕 쾌 시기에 상국으로 임명되어 국정을 장악했다. 연왕 쾌가 소대와 녹모수의 영향을 받아 자지에게 왕위를 양위하면서 권력을 찬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지가 왕위에 오른 후 연나라 내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제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자지는 사망하고 연나라는 제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이후 연나라 백성들이 제나라를 몰아내고 연 소왕을 옹립하면서 자지가 초래한 혼란은 종식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기원전 314년 사망 - 아이스키네스
    아이스키네스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웅변가로, 필리포스 2세에 맞서 아테네 독립을 옹호했으나 데모스테네스와 대립 후 로도스로 망명했으며, 그의 연설은 높이 평가받고 세 편이 전해진다.
  • 기원전 314년 사망 - 연왕 쾌
    연왕 쾌는 연나라의 왕이었으나, 재상 자지에게 권력을 넘겨 국정을 소홀히 하고 내란과 제나라의 침공을 초래하여 살해당했으며, 그의 통치 실패는 지도자의 자질과 책임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 연나라 사람 - 위만
    위만은 연나라 사람으로 고조선으로 망명하여 위만조선을 건국하고, 주변국을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했으나, 한 무제에 의해 멸망했다.
  • 연나라 사람 - 진무양
    진무양은 형가의 조력자로서 진시황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처형된 인물로, 어린 시절 무술에 능했으나 난폭한 성향을 보였다.
  • 춘추 전국 시대 사람 - 열자
    열자는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철학자로, 실존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그의 저작과 생애에 대한 증거 부족으로 인해 가상의 인물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 춘추 전국 시대 사람 - 혜시
    혜시는 전국 시대 위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공손룡과 함께 명가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동일성과 차이의 상대성을 논하는 역설적인 주장을 펼쳤고, 장자와 교류하며 서로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으며, 위나라 혜왕과 양왕을 섬겨 재상을 지냈다.
자지 (춘추 전국)
기본 정보
이름자지
다른 이름시피
왕조
재위 기간기원전 316년 - 기원전 314년
자지
사망 년도기원전 314년

2. 생애

자지는 연나라의 신하로 연 역왕 때부터 고위직을 지냈으며, 소진과 사돈을 맺는 등 교류하였다. 기원전 320년 연왕 쾌가 즉위한 후 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왕위를 찬탈하고 제나라의 침공으로 사망하였다.

2. 1. 연나라 상국 임명

기원전 320년, 연왕 쾌가 즉위하고 얼마 뒤 자지는 연나라의 으로 임명되었다. 자지는 결단력이 있었고 다른 신하들을 잘 관리하여 연왕 쾌의 신임을 얻었다. 연왕 쾌는 나이가 많아 점차 국사를 돌보지 않게 되었는데, 연왕 쾌 3년(기원전 318년) 제나라에서 죽은 소진의 동생 소대연왕 쾌와 면담하면서 신하를 신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득했다. 자지와 소대는 친인척 관계였고, 면담 이후 자지가 소대에게 100금을 선물로 주었기 때문에, 소대의 면담은 자지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1]

2. 2. 왕위 찬탈

소대와 녹모수(鹿毛壽|녹모수중국어) 등의 조언에 영향을 받은 연왕 쾌제요가 허유에게 양위한 사건을 본떠 자지에게 왕위를 양위하였다.[1] 이는 의 선양을 모방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권력욕에 의한 찬탈이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2. 3. 찬탈의 결과

자지가 왕위에 오른 일은 연나라 지배층의 불만을 샀고, 즉위한 지 3년 만에 연왕 쾌의 아들인 태자 평(平)은 이에 대항하여 장군 시피(市被)와 손잡고 왕궁을 포위했으나, 자지는 반격하여 크게 이기고 세자 평과 시피 모두 전사하고 만다.[1] 이때 연나라 백성들은 이 전투를 구경하기 위해 구름떼같이 몰려들었으며 어느 쪽 군대가 이기느냐에 대해 도박판까지 벌였다.

이 무렵 제나라에서는 맹자가 머물러 있었는데 맹자는 자지가 난을 일으켜 연나라가 뒤숭숭하다는 것을 제 선왕에게 보고하였고, 이에 선왕은 장군 광장(匡章)에게 10만의 병력을 줘 발해만을 따라 연나라로 쳐들어가게 했다. 자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던 연나라 백성들은 광장이 쳐들어오기도 전에 성문을 열어놓고 기다렸으며 자지의 부하 병사들도 하나 둘씩 도망쳤다. 자지의 군사(軍師)인 녹모수 역시 도망쳤다.

몇 명 남지 않은 병력을 이끌고 광장과 싸우던 자지는 결국 중상을 입었는데 그 와중에도 제나라 병사 100여 명을 쳐죽인 끝에 힘이 다해 죽었다. 광장은 자지의 시체에서 옷을 벗긴 후 커다란 장독에 집어넣고 젓갈을 담가버렸다. 한편 연왕 쾌는 제나라의 침공에 놀라 목을 매달아 자살했으며 연나라는 제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제나라 군대의 노략질에 질려버린 연나라 백성들은 결국 2년 만에 제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세자 평의 동생인 직(職)을 왕으로 세우니 곧 연 소왕이다.

2. 4. 제나라의 침공과 최후

이 무렵 맹자제 선왕에게 자지가 난을 일으켜 연나라가 뒤숭숭하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선왕은 장군 광장(匡章)에게 10만 명의 병력을 주어 발해만을 따라 연나라로 쳐들어가게 했다. 자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던 연나라 백성들은 광장이 쳐들어오기도 전에 성문을 열어놓고 기다렸으며, 자지의 부하 병사들도 하나둘씩 도망쳤다. 자지의 군사(軍師)였던 녹모수 역시 도망쳤다.[1]

몇 명 남지 않은 병력을 이끌고 광장과 싸우던 자지는 결국 중상을 입었는데, 그 와중에도 제나라 병사 100여 명을 쳐죽인 끝에 힘이 다해 죽었다. 광장은 자지의 시체에서 옷을 벗긴 후 커다란 장독에 집어넣고 젓갈을 담가버렸다. 한편 연왕 쾌는 제나라의 침공에 놀라 목을 매달아 자살했으며, 연나라는 제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제나라 군대의 노략질에 질려버린 연나라 백성들은 결국 2년 만에 제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세자 평의 동생인 직(職)을 왕으로 세우니, 곧 연 소왕이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